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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부의 시작입니다. "여섯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이번장은 여섯지역중 오스트레일리아 와 뉴기니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유럽인이 정복하기 전과 그 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도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뉴기니는 ‘선진적’이라기보다 여전히 ‘원시적’이다. 그럼 뉴기니인이 금속연장을 개발하지 못한 채 계속 돌연장을 사용하고, 문자 없이 지내며 군장사회와 국가를 조직화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뉴기니에는 그런 변화를 방해하는 몇몇 생물학적이고 지리적인 요인이 있었다.
첫째, 식량 생산을 뉴기니에서 독자적으로 시작했더라도 8장에서 보았듯이 곡물에는 단백질이 부족하다.
둘째, 식량 생산 지역이 제한적이었다는 것도 고원지대의 인구 증가를 억제한 요인이었다.
뉴기니가 유럽을 식민지로 삼지 못하고 그 반대가 되었던 이유는 자명하다. 유럽인에게는 바다를 항해해 뉴기니까지 갈 수 있는 배와 나침반이 있었고, 뉴기니를 지배하는 데 유용한 지도를 제작하고 지침서와 행정 서류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문자와 인쇄기가 있었다. 또 선원과 군대와 관리를 조직할 정치제도가 있었고, 활과 화살 및 몽둥이로 저항하는 뉴기니인을 쉽게 제압할 총기도 있었다. 하지만 유럽 정착민의 수는 항상 무척 적었고, 지금도 뉴기니에는 여전히 원주민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결함이 있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원주민이 4만 년 동안이나 문자도 없이 수렵·채집민으로 떠돌아다니며 살던 대륙에 영국 이주자들이 발을 들여놓은 지 수십 년 만에 문자를 사용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둘에 대한 비교는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완벽한 대조 실험으로, 결국 인종차별적 결론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게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백인 영국 이주자들은 문자를 사용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든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 모든 것, 즉 가축과 온갖 종류의 작물(마카다미아 제외), 야금술과 관련한 지식, 증기기관, 총과 알파벳, 정치제도, 심지어 병원균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밖에서 가져왔다. 그 모든 것은 유라시아 환경에서 1만 년 동안 숙성된 결과물이었다. 1788년 시드니에 상륙한 정착민은 지리적 우연으로 그것들을 물려받은 사람들이었다. 유럽인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따라서 로버트 버크와 윌리엄 윌스는 글을 쓸 정도로 똑똑했지만, 원주민이 살아가던 오스트레일리아 사막 지역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똑똑하지는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일궈낸 사람들은 그 대륙의 원주민이었다. 물론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문자가 있고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적 특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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