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 목 | 탈무드가 일러주는 힐링의 시간 |
저 자 | 주원규 |
출 판 사 | 마리북스 |
카톡 카톡~~! 쉬는 시간이 없이 울린다. 짧은 단어속에 많은것이 포함된다.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상터가 되는 글이 쓰여진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닌데, 짧은 글 속에 나의 생각이 온전히 전달 되지 않는다. 서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다. 치유와 힐링의 시간은 탈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릴적 탈무드는 어머니들이 선택 하는 교양 도서가 아니였을까? 동화속 인어 공주와 아더왕은 어린 아이들의 가슴을 설레가 한다. 어릴적 읽은 탈무드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책은 탈무드의 예시를 말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본다. 어릴적 읽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잘 아는 내용? 이지만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책은 1부 치유, 2부 힐링이라는 큰 제목을 달았다. 둘로 나뉘어 있지만 책 속의 잔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를 바라 보고, 내가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지? 나의 위치를 살펴 보며 치유를 받고, 힐링을 얻는다. 탈무드는 유머가 있고 생각한 것에서 벗어나서 이야기를 한다.
- 도박을 못하는 사위 혼자 깊은 산속에서 기도하며 자연과 벗 삼아 사는 랍비가 있었다. 이 랍비는 자연현상과 사물의 흐름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이치를 깨닫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왔다. 랍비는 친구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곤 넘겨짚듯 말했다. “얼마 전 막내딸을 시집보냈다며?" “그랬지.” “그런데 표정이 왜 이런가. 이제 아무 걱정도 없을 텐데." “자네 말대로 막내딸까지 모두 시집보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 하지만 막상 결혼을 시키고 보니 막내 사위가 말썽이네.” “막내 사위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우리 막내 사위가 도박을 못해도 너무 못하는 게 흠이야.” “도박을 못하는 게 무슨 흠이라는 말인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못하면 안 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도박을 죽어라 계속하고 있으니, 정말 나쁜 버릇 아닌가." |
어떤 생각이 들까? 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그리고 죽어라 하는 사위가 미워서인가? 아니면 안타까운건가? 사위의 버릇은 잘 못하는것을 열심히 하는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막내 사위가 죽어라 애쓰는 도박 역시 상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박 자체도 문제지만,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도 멈추지 않는 게 진짜 문제 아니겠는가. 혹은 일상에서 만나는 소박한 진리를 외면한 채, 거창한 비밀은 다른 곳에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도박이라는 뜻은 아닐까. 따라서 먼저 도박을 멈추려는 생각, 소소한 일상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바로 지혜이다. |
나는 가끔 어떤것을 할때 멈춰야 할 때를 모른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멈추지 못하는것이 랍비의 막내 사위가 아닐까?
말을 하루에 두마디도 하지 않는 이사님이 있다. 인사 조차 하지 않는 분이다. 그 분은 왜 말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신기할 정도이다. 단톡방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글을 달지 않았다. 아버님이 돌아 가셨는데 장례식장이 어딘지 알수도 없었다.
침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왜 인지 말하고 표현하는 게 두려워서 더는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침묵과 자발적으로 말을 하지않는 능동적인 침묵이다. 사실 수동적인 침묵은 침묵이란 표현을 쓰긴 했어도 진정한 의미의 침묵이 아니다. 수동적인 침묵은 과잉된 말하기에 지치고 무한 경쟁에 겁먹어 입을 열지 못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침묵과는 전혀 다르다. 이 무의미한 침묵은 결국 사람을 더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침묵은 참된 의미에서 탈무드의 지혜가 요구하는 침묵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능동적인 침묵은 세상 그 어떤 지혜보다도 값지고 달다. 능동적 침묵은 말의 어려움 때문에 말문을 닫은 게 아니다. 더 깊고 넓은 세상을 보고 나누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상대를 입술의 중얼거림이 아닌 침묵의 행간에 담긴 의미로 대하는 것이다. 행간의 의미를 자연적으로 추구하는 침묵은 수많은 가짜 뉴스, 오염된 말들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능동적인 침묵에 눈을 떠 보자. 침묵을 즐기자 침묵을 견디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무조건 체념하지 말자. 긍정적인 마음으로 침묵을 즐겨 보자. 고립감이나 우울감이 아닌 참된 여백을 느끼며 침묵을 받아들이자. 그 침묵이 우리에게 성숙한 깨달음의 손길을 내어 줄 것이다. |
자발적인 침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을 하는것보다. 하지 않는것이 더 잃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신것인가? 말을 많이 하여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극과 극으로 절대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것도 문제가 되는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장례식장에 갔지만, 특실에 손님이 한명도 없는것은 오랜만이다. 코로나 시대이지만 9시에 장례식장이 너무 조용했다.
- 혀의 무게 랍비 학교에 지혜롭고 현명한 제자가 있었다. 그는 특히 언변이 뛰어나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품은 지식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느 날 밤 제자는 자신을 가르치는 랍비를 찾아갔다. 개인적인 용무라 하더라도, 주요 사상에 대한 견해 차이를 논하는 대화를 요청할 때는 언제든 응해 주는 게 랍비 학교의 전통이었다. 랍비를 찾아간 제자가 무례함을 무릅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생님, 세상을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무엇입니까?"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던 랍비가 제자에게 답했다. “눈, 귀, 코는 어떠한가?" "네? 눈, 귀, 코가 어떻다는 말씀입니까? 보고, 듣고, 맡지 않습니까.” “그렇지. 눈, 귀, 코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없어. 하지만 입과 손과 발은 달라.” “뭐가 다르죠?”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조절할 수 있지. 이 중에서도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무엇일까?” 제자가 답을 망설였다. 답을 못하는 제자에게 랍비는 단호하고 빠른 어조로 말했다. “바로 혀야.” “혀요?” “그래, 혀, 혀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 내가 받아들인 것의 절반만 표현하고 사용하라 눈, 귀, 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실로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리가 인정하는 인정하지 않든, 그것들은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 창조하고 있음을 수시로 실감하게 한다. 눈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을 목격한다. 그중에는 희망을 주는 장면도 있고, 반대로 절망을 주는 장면도 있다. 눈은 절망과 희망, 두 장면을 모두 목격한다. 귀 역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소리까지, 귀는 차별 없이 소리를 듣고 받아 들인다. 코는 또 어떠한가. 촉각과 후각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감각적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잠시 귀를 닫아도 우리는 코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 이렇듯 우리의 눈, 귀, 코는 늘 받아들이며 세상과 소통한다.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인 소통의 즐거움을 혀를 통해 타인과 나눈다. 하지만 혀를 통해 타인과 즐거움을 나눌 때는 매우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내가 받아들인 것의 딱 절반, 아니 그 절반의 절반만 표현하고 사용하는 게 좋다. 왜 그럴까? 나의 혀, 즉 말을 할 때는 완벽하게 차별과 편견 없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하게 타인을 배려해 타인의 입장에서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나는 항상 그 이사님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나의 혀는 타인을 배려 하고 있을까? 그 분은 말하는게 두려울 수도 있고, 말하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말이 없는지 물어 볼 수도 있을거다. 그런데 자신이 없다. 그냥 그분은 그렇게 살게 두는게 서로 좋은 방향이 아닐까?
탈무드의 지혜에서 주목할 점은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있다. 바로 탈무드에서는 섣불리 정답을 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랍비들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도 끊임없이 토론하며 답을 찾아갔다. 한 가지 답에 쉽게 안주하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이게 답이야” 라고 결정하는 순간에도,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며 새로운 답을 찾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이 이야기의 답을 새로운 관점에서 구할 필요가 있다. |
탈무드의 지혜, 이게 답이야 라고 결정하는것이 아니다.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는것이라 한다. 책속의 예문은 누군가에는 기분이 나쁠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치료가 될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답을 정하고 결론을 내리는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생각하는것이 탈무드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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