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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정비석의 명성황후

by KANG Stroy 201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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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비 명성황후.. 명성화후라고 하면 아마도 모르는분이 없을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것이다.

일본자객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었다는것 하나? 나라의 힘이 없어 조선시대의 나라의 국권이라고 할 수 있는 왕비가 죽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속에 있는 울분이 치솟는다.

그러나, 이런 울분도 참고 역사를 다시 돌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소설은 어디가 픽션이고 어디가 진실인지를 알고 봐야 한다. 소설이라는것은 허구를 가미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허구가 진실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조사도 필요 할것이라고 본다.

명성황후에 대한 안좋은 이야도 많고 좋은 이야기도 많다는것을 짧은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다.

정비석의 명성황후는 좋은거 같으면서도 나쁘게 명성황후를 이야기 한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훌륭한 장군감이 될 것이라는 복선으로 시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원군의 대결구도. 시아버지와의 대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대결 구도가 되었는가? 이 책에서는 시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왕비로서 알아주지 않고 무시하는 행동과 말을 하였기에 그렇게 밖에 될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하여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대원군을 섭정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친인척인 민씨들을 정치판에 들여 놓으면서 대원군을 축출한다.

축출 후 명성황후는 고종의 뒤에서 고종을 조정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로봇처럼 대원군에 끌려 다니고 여자에게 끌려다니는 의지 부족의 왕으로 나타내고 있다.

명성황후는 낭비벽이 심하며, 무당들을 좋아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무당들을 좋아하여 나라의 돈을 탕진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민란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고 이야기 한다.

고종 이 집권 하였을때 큰 민란이라고 하면  동학농민운동..

나라의 말에 좋지 않은일들만 일어나니 안타까움이 묻어 난다.

흥선대원군 10년 명성황후 10년.. 그 20년 동안 우리나라는 처참하게 망가져 갔다는것을 책에서 말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정말 잘 한것인가? 아니면 명성황후의 대외정책이 정말 잘 한것인가? 의문이 든다.

두 사람의 권력으로 인해 나라가 망할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내포하는듯한 느낌이 어디서 보고쓴듯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의 교묘한 역사 속임이 우리나라 지식인들에 미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비석 소설가를 비판하고는 싶지 않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일본에서 공부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을 삐딱하게 바라 보면서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다.

요즘의 정치를 보면 이것과 저것 저것과 이것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극과 극으로 가듯이 이때의 정치도 그렇게 되어가는것이 아닌가 싶다.

중도라는것이 없다는것이다. 둘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죽거나 아니면 정치판에서 나가 떨어져야 하는 그런의미?

중요한것은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군대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았다는것이 안타깝다. 외국의 군대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벌리고 궁궐로 들어와도 우리나라 군대가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는것이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도 우리나라의 왕비를 보호 못 한 군대의 잘못도 있으리라 본다. 냉철하게 보면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국력을 세우지 못한 자업 자득, 청나라의 군대에 의지하고 미국에 의지 하려 하였으며, 나중에는 러시아의 군대에 의지 하려 한.. 우리나라의 국력의 안타까움에 울분이 터진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때로 돌아가는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조선말에 주변의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의 내정에 간섭을 하려고 드는것처럼 중국의 국력이 점점 강해지며, 일본의 독도에 대한 침탈이 이전과 다르게 강도가 세어지는것을 보아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 힘이 좋다고 생각하던 청나라의 힘이 약해지는것이 지금의 미국의 국력이 약해지는 것으로 보이며, 소련의 힘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명성황후를 나쁘게 이야기 한다고만 볼수 없고 느껴야 할것이라면 자신의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지킬수 없으면 .. 그것은 남에게 빼앗길수 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진실을 알아야 할거 같다.

그시대에 살지 않았기에 .. 역사책을 한번 더 뒤져 봐야 할거 같다. 역사소설 한 권을 읽고 모든것이 사실인것처럼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

저자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고 여러곳을 평가를 검색해 보았다. 그중에 보편적으로 평가한것이 위키백과라고 생각하고 올려 본다.

 

정비석(鄭飛石)

[링크] 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3681

1911∼1991. 소설가. 본명은 서죽(瑞竹). 평안북도 의주출생.

1922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문과를 중퇴하고, 1940년 매일신문(每日新聞) 기자, 1945년 중앙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하였다. 이어 1961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처음에는 시 〈어린 것을 잃고〉(1935)를 《동아일보》에 발표하였으나, 1936년 단편소설 〈졸곡제 卒哭祭〉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어 1937년에는 단편소설 〈성황당 城隍堂〉이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어 그뒤부터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니혼대학교를 나왔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역사를 많이 보았다고 본다.

정비석 작가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
http://news.nate.com/view/20070822n13527

 위키백과

[링크]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B1%ED%99%A9%ED%9B%84

 당대의 평가

유길준

친구 윤치호에 의해 명성왕후의 암살범으로 지목되었던[73] 유길준은 명성왕후를 '세계에서 가장 나쁜 여성'이라고 혹평하였다.[25] 암살 직후 유길준미국인 은사 모스에게 보낸 날짜미상의 편지에서 유길준은 명성왕후를 영국메리 여왕과 프랑스마리 앙투와네트보다도 더 악하다고 비판하였으며, 비판 사유로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는 국왕은 일개 인형이고 왕비는 그 인형을 갖고 노는 사람이라는 시중의 소문을 근거로 제시하였다.[25] 유길준은 명성왕후를 개화당 살해의 배후로 보았다. 모스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에서 유길준은 명성왕후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와 비밀 접촉하고, 1894년 가을 개화당 모두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미다가 국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에게 발각되었다고 하였다.[25] 황현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명성왕후의 사치와 민씨정권의 매관매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75]

후대의 평가

명성왕후에 대한 역사학계의 평가는 친일 급진개화파와 수구적 척사파, 일본 관변 측으로부터 모두 좋지 않은 평을 얻었다. 반면에 그러한 좋지 않은 평가는 명성왕후의 정책 노선이 그만큼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다는 반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명성왕후와 척족 세력은 중인 중심의 개화파와는 달리 전통과 서양 문명을 절충하려는 동도서기의 정책 노선을 띠었다. 이 때문에 급진개화파의 입장에서 사대당 또는 수구당으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면에 고종의 입장에서는 근왕파로서 고종이 시도한 광무개혁의 지지세력이었고, 을미사변 이후에는 반일의병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였으며, 대한제국 성립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77] 그러나 대원군에 의해 척결된 세도정치를 다시 불러들였다는 비판과 외세를 이용하려 하여 국내에 일본의 침입을 촉진시켰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외국의 평가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버드

명성왕후에 대해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좋게 평가했다. 이를테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예민하지 않은 민간인의 기록이 그러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명성왕후가 영리한 판단력과 뛰어난 외교력을 지닌 교양 있는 여성임을 전해준다.[76]

영국 왕립지리학회회원이기도 한 지리학이사벨라 버드는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서 명성왕후와 흥선 대원군과의 정치적 대립에 대해서 언급하면서도, 명성왕후를 '대화내용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눈부신 지성미로 얼굴이 빛나는 지식인이자 우아한 자태를 가진 귀부인'으로 묘사하였다.[78] 또한 어의였던 언더우드 여사의 기록에서도 명성왕후는 우아하고 근엄했다고 표현하였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왕비가 우아하고 근엄했으며, 체형은 수척했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눈빛은 날카롭고 초롱초롱했다고 밝히고 있다.[79] 게다가 순박하면서도, 즉 순수하면서도 뛰어난 기지와 매력을 지닌 분으로, 서양의 기준에서 볼 때도 완벽한 귀부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윌리엄 프랭클린 샌드는 “뛰어난 학문과 지성적인 강한 개성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력을 지녔으며, 시대를 추월한 정치가이자 외교가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쓴 분이었다.”라고 썼다.[76]

한편, 일본의 화가들이 그린 명성왕후의 삽화는 모두 그 모습이 뚱뚱하고 심술궂게 그려져 있다. 또한 일본 외교관들은 그녀를 “여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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