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 목 | 내가 되는 꿈 |
저 자 | 최진영 |
출 판 사 | H |
21~22 나는 제대로 울지 않았다. 울면 안 된다는 생각, 나의 울음이 아빠를 완전히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게 힘을 줬다. 그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은 모두 어른의 일이었다. 죽음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사람들. 죽음이란 원래 그런 것임을 어렴풋이 경험한 사람들의 일. 이제 그들의 나이가 되어서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내게 남긴 2백만 원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못하는 거를 네 엄마가 하는 거고 네 엄마가 못하는 거를 내가 하는 거고. 나를 맡아 보살피던 어느 날엔가 할머니가 무심히 꺼낸 말. 언젠가는 네가 못하는 거를 네 엄마가 할 거고 네 엄마가 못하는 거를 네가 할 거고, 그런 거다. 사는 게 지금이 영영일 것 같지만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가스 불 위에 올려 둔 냄비에 된장을 한 숟가락 풀면서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나를 달래려는 말도 아니었고 가르치려는 말도 아니었다. 기도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내 시간을 사는데 거기 누가 들어오는 거야. 그런다고 내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진다고 시간이 가는 거겠나. 내가 알고 살아야 그게 시간이지. 네가 지금 부모를 원망할 수 는 있어. 원망하는 그 시간은 어디 안 가고 다 네 거야. 그런 걸 많이 품고 살수록 병이 든다. 병이 별게 아니야. 걸신처럼 시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게 다 병이지. 그때 나는 싱크대에 기대앉아 마늘을 까면서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가 또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어떤 말들은 내 몸에 체취처럼 스며들어 지울 수 없는 일부로 남아 버렸다. 시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게 다 병이라면 나는 지금 병이 든 상태인지도 모른다. |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
그리고 편지도 남기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담배 끊어라 편지에 적힌 내용은 그뿐이었다. 이어 메시지가 왔다. 너 담배 피우냐 답장을 썼다. 아니 예전에 잠깐 고등학생 때 바로 답장이 왔다. 별걸 다 했네 할머니가 난리 났겠어 그 시절 할머니와 다투던 기억이 났고 웃음이 났다. 엄마도 잠깐 웃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답장을 썼다. 응 할머니 담배 훔쳐 피웠으니까 바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어디냐, 뭐 하냐, 밥은 먹었냐고 묻는 워밍업도 없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가 담배를 피웠다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카페 밖으로 나왔다. 카페 내부가 너무 고요해서 모두에게 우리의 통화가 들릴 것만 같았다. 할머니 병원 다닐 때는 그런 얘기 전혀 없었는데. 엄마가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할머니도 그때 잠깐 피웠겠지. 엄마는 웃지 않았고 나는 왠지 슬퍼졌다. 내게 남길 수 있는 아주 많은 문장 가운데 '담배 끊어라' 를 선택한 할머니는, 아마도 내가 웃길 원했을 거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자 웃을 수 없었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있었지. 이 망할년아, 할머니가 뭘 알아, 내가 모르는 건 또 뭐냐, 할머니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는데,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내가 누구한테 배웠겠어………. 생을 정리하면서 할머니는 그때를 기억해 낸 거다.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라, 윽박지르고 대드는 방법으로 서로의 비밀을 걱정하던 시간을 |
외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 편지와 200만원을 남기셨다. 사회에 찌들어서 돈 200만원과 편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장이란 작자, 남친이라는 사람이 짜증나게 한다.
시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졸업식 후 외할머니 댁으로 오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일로 인해서 떨어져 지낸다. 그래서 외할머니 댁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사춘기의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서 이모와 같이 한 방을 쓴다. 이모가 연애 하는 날은, 내가 방을 혼자 쓸 수 있는 날이 된다. 화장대의 이모의 화장품으로 얼굴을 꾸며 본다. 이모의 브라우스도 입어 본다. 늦게 들어 올줄 알았던 이모는 밤 10시에 들어와서 울다. 화장품에 손을 댄 나에게 화를 낸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난 이집에 짐인가?라는 생각에 집을 나선다. 이모가 달려온다. 할머니가 늦은 밤에 무슨일이냐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둘러 댄다.
어느덧 성장해서 이모와 동일하게 연애의 아픔을 겪는다. 직장에서 무시하는 부장에게 사표를 던진다. 참을 줄 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사표를 던지고 갈곳 없는 내가 간곳은 할머니댁이 였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려간다. 엄마와의 관계는 서먹하다.
중고등학교때 쓴 일기장을 보면서 추억속에 빠져든다. 나중에는 버릴건데,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기로 한다.
나의 사춘기가 끝나면 버릴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에 남겨줄 것이 있을까? 나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두고 간다면? 200만원과 편지 한장을 남기는 것은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유튜브에서 아내가 죽으면서 욕실의 화분에 물을 꼭 주어서 죽이지 말아 주세요. 몇 달간 남편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짐을 정리하러 온 딸이 화분에 물을 주는 아버지를 보고 웃는다. 유쾌한 아내의 마지막 장난이였다. 꽃은 조화 였다. 이 웃긴 장면을 아내가 볼 수 있을까?
유쾌한 삶을 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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