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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책읽기]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

by KANG Stroy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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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
  저      자   이혜선  
  출 판 사    스몰빅라이프 

유튜브에서 "개는 훌륭하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강아지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물고 짖고 사람들을 위협한다. 강아지가 기분이 좋을때는 말을 듣지만 어느 순간 화를 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산책을 할 때면 지나가는 강아지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산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강아지도 있습니다. 이런 강아지를 짜~!잔~! 하고 치유를 해 줍니다. 이 프로그램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포인트는 개는 잘 못이 없다. 훈련을 시키지 못한 개, 사회성을 기르지 못하게 한 개는 이렇게 되는게 맞다.

잘 못된 습관과 주인도 모르게 잘 못 된 교육을 통해서 강아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교육을 통해서 훈련을 시켜 변화된 강아지를 만듭니다. 우리 강아지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지도자는 강아지의 중요 포인트를 잡아 냅니다. 

TV에서는 한 시간 안에 고쳐 지는게 보이지만, 심각한 강아지는 오랜 시간을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작년부터 사람과 회사 그리고 일에 치이고 있었습니다. 착한 아이 컴플랙스라고 해야 하나요? 누가 뭐라 해도 그래요 제가 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힘들어서 못한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 했습니다. 선의로 시작한 부분이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시키는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 한거죠. 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잘 못된 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죠. 이런 저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 속에 있던 고민이 책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잘 찾아내서, 그래 그걸 내가 놓쳤구나.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당황하게 한게 그거구나. 자~! 이거 봐봐 넌 잘못한게 없어.

"2장. 타인에 걸려 넘어진 당신에게" 타인에게 걸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화만 내고 있었죠.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누군가 일으켜 세워줄 줄 알고 화만 내고 있었던 겁니다. 

남보다 나를 챙기는 연습이 필요할 때
송민 씨는 어디에서나 늘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내가 의미가 없어진다 생각하며 밤샘을 밥 먹듯이 하면서까지 팀원들을 챙겼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송민 씨에게 말한다.

“송민 씨, 자신을 먼저 챙겨요.”

송민 씨는 돌이켜보니 자기 자신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사실은 사람들한테 욕먹기가 싫었던 거였어요. 내가 나 부터 챙기고 그 사람을 안 챙기는 건 이기적이고 나쁜 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인데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고 싶었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저부터 챙겨요. 저번 직장에서는 빵 하나라도 내거 사는 김에 얘 것도 사야지 했는데 이번 직장에서는 내 거사고, 자기 것은 안 사 왔다고 서운해하면 '다음에 사줄게' 말로 때우고 넘어갈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나부터 챙기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지금껏 남을 위해 살았어요. 나를 챙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이고 싶었어요. 저는 괴로웠어요. 집에 가면 녹초가 되는 건 끊어낼래요."

나를 챙기지 못했다. 남을 챙기면 그들이 나를 도와줄 줄 알았다.

나는 나를 챙기는 법을 몰랐다. 

왜? 누군가를 도와주는 법은 배웠지만, 나만 챙기는것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나 하는거야. 그런 말에 속은 것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가는 할머니를 돌봐줘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 주면 의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힘들면?? 남을 돕기 전에 나를 챙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것이며, 그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설령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혹은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면, 그 사람과 솔직하게 대화해서 수고로움을 각오하고 갈등관리를 할 것인지 혹은 갈등을 그대로 둘 것인지 선택할 수가 있다.

그 사람이 내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영역까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나는 내 마음에만 통제 권한이 있음을 명심하자. 좋아하는 꽃향기도 사람마다 다 다르듯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모두의 마음 또한 내가 통제할 권한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사람이 나를 싫은건 어쩔수 없다. 내가 변화 시킬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직장에서 난 6시에 퇴근할 의무도 있다. 왜?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이기에 도와 줄 수도 있다. 그래도 일에서 나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분도 필요 하다. 나를 위해서 야근을 할 수도 있다. 내 커리어를 높이기 위해서 늦은 시간과 주말까지 나와서 일 할 수도 있다.

잘 나가는 회사는 직원과 회사가 같이 성장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내가 일을 하면서 나도 성장하는 방향의 일을 해야 하는것이다. 남을 도와주고 나는 남는것이 없다면? 이기적인게 꼭 나쁜것은 아니다. 나와 회사가 같이 성장하는 이기적인 상황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학교 때 초등학교 친구가 나만 보면

"너는 대학 갔다고 모임에 잘 안나온다. 거리가 멀어도 와야 친구아니냐?"

그렇게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술 자리에게 훈계를 한다. 몇번은 그걸 다 받아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친구가 그 말만 하게 된다.그리고 화를 내고 있다. 진정한 친구라면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을거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다. 

"친구라면 나를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너는 친구의 약점을 가지고 나를 힘들게 한다" 고 말을 했다.

친구는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는 더 좋은 모임이 되었다. 친구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나를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잘 못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진작에 나의 감정을 이야기 하는게 필요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이야기 해서 당행이였다. 

나를 챙기는 방법을 알아가는것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 

타인의 평가는 타인의 것이다. 

나의 숙제가 아닌 그들의 숙제다. 나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평판을 관리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판단할지는 그냥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자. 내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면 지배당할 필요는 없다. 

공동체를 살아가면서 타인의 평가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할 바에는 무시하고 대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책속에서 현재의 나를 보았다. 타인에 걸려 넘어진 나를 보았다. 넘어진 나의 문제점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 였다.  

개는 훌륭하다에서 문제점을 확인한 강아지는 이제 교육을 받는다. 그래야 훌륭한 강아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회성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강아지 였다. 

나는 사회에서 자신들이 이용하고 싶은 그들만의 착한 강아지였다. 그런데 이 착한 강아지는 내가 아니다. 나는 착한 강아지가 아닌 바로 "나"이다. 나 자신이다. 나는 강아지가 아니다. 야옹~~!? 고양이도 아니다. 

나는 변하고 싶다. must가 아닌 want 의 사람으로 말이다. 내가 이것만 해 주면 저 사람이 변하겠지?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 같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 더 변하기 어려워 지는거 같다. 

그렇다면 '진짜' 변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걸까?

한마디
로 말하면 해야 한다(must)'라는 당위가 아닌 '하고 싶다.
(want)'라는 욕구에 기반한 마음이다.
흔히 사람들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을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이고,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
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야 한다'고 생
각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끝끝내 안 하고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사실은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은데, 조금 불편할 뿐이야',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겼어.

'사람 잘 안 바뀌잖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외면하며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해하진 않았는가?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변화를 위해서는 관성을 거스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해야 한다'에서 비롯된 마음만으로는 이 장애물을 돌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자의가 아닌, 누가 하라고 해서(혹은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건, 실패하게 되면 그 사람 탓 혹은 상황 탓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스스로의 희생이나 노력으로 그 상황을 뚫어낼 만한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목표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어려워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면, 사실은 그것을 별로 안 하고 싶은 건 아닌지, 즉 원래 살던 대로 살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는 게 합리적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며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강화해 봤자 마음의 부담만 하나 더 생길 뿐, 어차피 살던 대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원래 살던 대로 살고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보내줌으로써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편이 내 마음을 위하는 일이다.

나는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에 치여 있었다.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것이다. 이것 좀 도와주면 안되? 그.. 그...그래.. 유대관계를 위해서 도와 주었다. 나에게 기대는 사람들을 내가 만들고 잘못된 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강아지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못되 처 먹은 강아들이 둘려 쌓이게 만든것이다. 

나는 원(want)하는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 주변에 훌륭한 강아지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안되는것은 안된다 말해야 한다.

"안돼~!" "기다려~!" "누워~!" "빵~!" "손~!" "발~!" "엎드려~!" 

"잘 했어~! 굳 보이~!~!~!!~"

강아지가 말을 들으면 간식을 던져 주어야 하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 하지 않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필요하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이 쉬운 사람이 별로 없는 우리네 삶에서 이만큼 반가운 일은 별로 없다.

한 번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면 내 곁에 그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다정한 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나 자신과도, 타인과도, 이
세상과도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인생은 언제나 지금부터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모
두 끌어안은 내가 지금을 살아가는 일에 충실한 것.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어떠한 감정의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우린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강하기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한 나는 먼 훗날 든든한 나의 역사가 되어 줄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지금부터다. 내일은 없다. 바로 지금만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에게 미래는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거다.

"개는 훌륭하다" 에서 변화된 강아지들의 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웃는지 우는지 모르지만, 강아지들은 안정감을 찾아간다.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 나를 몰랐기 때문에 아픈것이라 생각한다. 편안한 모습의 나를 찾자~! 굳~!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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