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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책읽기] 인간의 마지막 권리

by KANG Stroy 2019.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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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

  인간의 마지막 권리

  저      자

  박중구 

  출 판 사 

  동녘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사무실은 어두워졌다. 아 작업 하던거 어쩌지? 아싸~! 라는 말도 나왔다. 정말 오랜만의 정전이다. 주변 건물들을 살 펴 보았다. 이 지역만 정전이였다. 정전으로 즐거움과 짜증이 교차 했다. 정전 복구가 되기전까지 합법적인 땡땡이를 부여 받았다. 담배 피는 사람들을 따라서 편의점 앞으로 갔다. 가끔 담배피는 사람들을 따라가면 먹을 것이 생긴다. 


편의점 앞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카톡 단톡이 들어 왔다. 주변 건물이 무너져서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 출근 시간에 지나온 건물이다. 큰일 날 뻔 했내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 하러 나갔다. 사진도 몇장찍으러 갔다. 


도로는 막혀 있고 강남으로 나가는 차들은 아우성이였다. 건물 앞에는 두대의 차량이 무너져 내린 건물 앞에 있었다. 직원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운을 받은 차량이다" 몇 발작만 앞으로갔다면 위험한 일이 일어 날 뻔 했다. 


여러장의 사진을 찍고 단체 카톡에도 공유를 했다. 카톡 대화방은 사건 사고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몇몇은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 했을 것이다. 


저녁이 되었다. 수습이 빨리 끝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명이 건물에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퇴근을 했다. 아침에 출근하니 1명이 건물 더미에 있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 무너져 내린 사진을 찍었던 나는 창피스럽고 고인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반지를 찾으러 가던중 일어난 사고라고 한다. 신부가 죽어가는것을 보고 있었을 신랑을 생각하니 더욱 미안함이 밀려 온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아침에 출근시 그 건물을 지나 왔다. 그 때 건물이 무너졌다면? 신문에 나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그 죽음은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이가 들었는지 어릴적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이 "인간의 마지막 권리"를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 할까?


세상에 태어나면 이제는 죽음을 준비 해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성경의 욥기에서 욥기는 엄청난 시련을 격을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어머니의 태속에 있었던것을 저주 했다. 이 지구상에서 이 세상에서 어떤 생명체이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죽음에 대해서 고민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문득 내가 갑작스럽게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USB를 누가 보고 이 사람 이상한 영상을 많이 가지고 있었내!라는 말을 할거 같다. 

보편적으로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죽음을 준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보편적인 이론에 근거를 기반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죽음의 징후 : 죽음이 가까울수록 환자에게는 여러 징후가 나타난다. 


첫째반응이 줄어든다.

둘째시간장소친구가족 구성원을  알아보지 못한다.

셋째움츠리고 주변을 멀리한다.

넷째식욕이 떨어지고 음식과 물을 적게 섭취한다.

다섯째방광 기능과 배변 기능이 점차 상실된다.

여섯째, 소변 색이 검어지고 소변 양이 줄어든다.

일곱째, 시력이 저하된다

여덟재, 숨을 혈떡 거리거나 꾸르륵 소리가 난다.

아홉째, 몸의 말단 부위 피부가 푸른색을 띠는 청색증이 나타난다.

번째, 신체가 차가워지면서 말초신경의 통증을 느끼고 심장에서 곳부터 몸이 식어간다

열한 번째, 마지막 숨은 들이쉰다기보다 다소 불완전하게 내쉬는 숨일 때가 많다

열두 번째, 숨이 멈추면 신체를 방어하던 모든 면역 기능이 정지한다

죽음의 징후들이다. 간략하게 제목만 뽑아 보았다. 모든 기능이 점점 퇴화 되고 있다. 어릴적에는 나이가 들어 가길 원했는데, 나이가 들어갈때는 점점 젊어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전철의 노인석에서 이 책을 서서 읽었다. 그러면서 노인들도 젊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은 점점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것이다. 나도 저 자리에 앉으면서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갔을가?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 때가 되었을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마음의 준비갈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죽음의 무서움에 빠져서 다른 일을 못하는것은 바보 같은 짓이겠다. 

죽음의 준비 


죽음을 준비 해야 하는 시점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 시점이 왔을 때 난 무엇을 하길 원할까?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기 위해서 노력을 할까? 아니면 죽음을 받아 들이고 좀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것을 택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에 난 무엇을 할 것인가? 

로마의 황제 중 암살을 당하지 않은 황제들 중 자신의 죽음이 민망하지 않으려고 곡기를 끊고 죽음을 택하기도 했다. 로마시대 황제를 만들어 낸 카이샤르는 암살을 대비 해서 인지 후계자를 미리 선정해 두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 이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 


"인간의 마지막 권리"는 죽음이 왔을 때,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지 물어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무엇을 준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한다. 


이렇게 책은 시작 된다. 


2017 대한민국 사망자 76%, 15%만이 주거지에서 죽음을 맞았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들 비율은 네덜란드 29.1%, 미국 43%, 프랑스 57%, 일본 75.8%로서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가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는 비율이 높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율이 우리나라가 높다. 죽으려는 자와 죽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고, 의료기관은 돈 벌이게 눈이 어두워서가 아닐까? 


알츠하이머협회가 예시하는 치매 초기 증상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기억상실

2. 미래를 계획하거나 문제 해결을 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음
3.
평소에 하던 일을 하지 못함
4.
시간과 장소에 혼란을 보임
5.
시각적 이미지와 특별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함
6.
말하고 글을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보임
7.
물건을 제대로 집지 못하거나 발을 헛딛음
8.
판단력이 저하 되거나 상실됨
9.
노동이나 사회 활동을 꺼림
10.
삶의 태도나 책임감에 변화가 나타남

죽음이 왔을때 담담하게 맞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호스피스 돌봄에는 의사조력자살 과정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환자가 원할 경우, 그리고 법에 허용된 사회에서만 환자를 조력 자살 과정에 연계할 있다.


1. 치료 중단

2. 호스피스와 고통 완화 돌봄

3. 자발적 단식 

4. 통증 완화 진정제 투여 

5. 존엄사법 

몸이 더이상 움직이기 어려워 졌을때, 죽음이 한 걸음 앞으로 왔을때 선택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면, 대부분 병사 일것이다. 이때를 위한 자신의 마음을 다 잡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은 결국 홀로 맞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어감의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함으로써 그를 도울 있을지 묻는다. 죽어가는 이의 고통을 차단함으로써 의식마저 잃은 상태에서 숨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까? 절절히 고통을 겪다가 자연스럽게 죽도록 해야 할까? 아니면 특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죽어가는 시간의 단축을 돕는 것이 옳을까? 이는 의료적 처지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법적 승인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법적 승인이라는 입법화 과정에 앞서 다양한 윤리적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이 맘에 든다. 죽은 결국 혼자 맞이 하는것이다. 


누군가 옆에 있어 줄 수 있겠지만, 결국 혼자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만을 생각하면서 어둡게 살 필요또한 없을 것이다. 


생각하기


작년 이맘때 쯤 요로 결석이 났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잘 못되어서 진통제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약을 받았다. 아스피린을 10알씩 먹어도 아픈 통증은 잠깐 사라졌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몰려 온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30분은 괜찮다가 30분이 지나면 통증이 몰려 왔다. 밤을 그렇게 보내고 약을 계속 먹을 수는 없기에 병원을 다시 방문해서 주사를 맞았다. 기가 막히게 아픈것이 사라졌다. 주사의 약이 마약성분에 준한 약이라고 했다. 그렇게 아픔을 참으면서 2주를 지내다 보니 아프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은 곧 나을 것이라는것을 알고 있다. 몸속에서 돌이 다 빠져 나가면 아픔은 사라질 것이다.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병이 언제 나을 것인가? 완치 되지 않으면?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을 참으면서 하루 하루 생활을 할것이다. 

죽을 권리를 찾으러 죽음을 인정해 주는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지쳐서 그 고통을 멈추고 싶은 충동에 죽음을 선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자들으 위한 배려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연명 치료를 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과 살기를 바라는 이들의 고통이 더 하지 않을까? 

수년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한다. 더이상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생을 마감 하셨다. 

갑작 스러운 죽음이 아니라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것을 이기기 위해서 종교가 있는것이 아닐까? 종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거 같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는것과 같지 않을까? 매일 나에게 새로운 아침이 있음에 감사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지옥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아침에 살아 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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