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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책읽기] 패싱

by KANG Stroy 202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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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   패싱 
  저      자   넬라 라슨 / 박경희
  출 판 사   문학동네

"passing" 영어의 단어의 뜻은 <통행,통과,나감,죽음><통행하는,통과하는,일시적인><뛰어나게> "pass"는 <통로,좁은 길><통과하다,지나가다,승인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넬라 라슨은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가끔 이렇게 되면 어떤 피부를 가지고 태어날까? 라는 생각을 가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궁금증이였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그의 친구는 고통이 될 수 도 있는 부분이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였습니다. 

 

여기서 passing은 백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피(blood) 속에는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1920년대에는 흑인의 인권 상태가 높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고 말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68년에 암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만큼 1920년대에는 백인과 흑인이 서로 섞이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크게 등장인물로는 패싱을 한 클레어와 주인공인 아이린 그리고 그들의 남편들이 나온다. 아이린은 패싱을 하지 않고 흑인인 남편과 결혼을 했다. 클레어는 백인 우월주의자 남편과 결혼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 호텔에 있던 아이린을 클레어가 만났다. 클레어는 자신의 집에 아이린과 또다른 친구를 초대 했다. 초대 받은 집에 남편이 등장한다. 

클레어가 남편에게 차를 건네며 애교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즐기는 투로 말했다.
“세상에, 잭!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한 뒤에, 나에게 흑인의 피가 일이 퍼센트쯤 섞여 있다 한들 달라질 게 있어요?”

벨루는 서둘러 완강하고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지. 닉." 그가 말했다.
"나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당신이 깜둥이가 아닌 걸 아는 한, 다 괜찮아. 당신이 얼마든지 까매져도 상관이 없다고, 당신이 깜둥이가 아니라는 걸 내가 아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리 집안에 깜둥이는 안 돼.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아이린은 입술이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픈 파괴적인 욕망이 끊어 가까스로 참았다. 웃음은 사라졌다.

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것 보다 백인으로 살아가는것이 안전한 세상이였을 것이다. 몸속 흑인의 피가 흐르지만 외모는 백인인 여성들 그들은 패싱을 할 것인지? 아니면 패싱을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패싱을 하더라도 임신 후 태어난 자녀의 피부색이 어떨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패싱은 주인공 아이린과 오랜 시간 백인 행세를 하다가 나타난 클레어의 만남으로 시작이 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아이린에게 클레어는 거추장 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클레어는 패싱을 하였고, 아이린은 패싱을 하지 않았다. 아이린은 패싱한 클레어를 부러워 하면서도 질투를 한다. 클레어는 자신이 보아도 이쁘고 옷도 잘 입는다. 주변 사람들이 클레어에게 빠져든다. 남편도 눈에 띄게 클레어에 빠져드는거 같다. 클에어와 바람을 피우는것 같지는 않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아이린은 클레어를 죽이고 싶은 충동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클레어의 남편이 흑인 모임에 나타나 클레어가 건물에서 떨어진다. 그 바로 옆에 아이린이 있었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아이린이 죽였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이린이 직접적으로 죽이지 않았지만, 아이린 마음은 클레어를 수백번은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면 자책하는 아이린의 마음도 클레어의 함께 떨어진것은 아닐까? 

 

클레어와 아이린, 아이린과 클레어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부러워 한것은 아닌가 싶다. 백인의 삶을 그리워한 아이린, 흑인들과 즐거운 삶을 그리워한 클레어 누가 더 행복한 것인가? 

백인과 흑인이라는 경계선에 선 두 사람을 보게 된다. 위험한 백인의 삶, 흑인으로써 주변에서 린치를 당하는 삶 안정과 평안함 서로 상극적인 삶을 계속적으로 보여진다. 

결국 죽음 밖에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없는 것인가? 서로의 삶을 보면서 그리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흑인과 백인이라는 경계선, 우리는 어떤 경계선에 서서 서로를 바라 보고 있을까요? 

 

위험한 도박을 한 클레어의 삶이 더 즐거울까요? 아니면 안정적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그리워하는 아이린의 삶이 더 즐거울까요? 둘다 하는것이 맞겠지만, 무언가 선택을 한다면? 지금은 안정적인 아이린의 삶이겠내요.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날 클레어라는 삶이 나타나면 과감히 받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계선에 머문다는것은 어떤것도 하지 않는것이 아닐까요? 

 

참고) 1958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그린북" 영화에서는 흑인들이 기름을 넣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표시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흑인이기에 백인들이 거부하는 곳이 많기에 생긴 책이기도 합니다. 패싱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하나 더 추천한다면 그린북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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