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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책읽기] 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by KANG Stroy 201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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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시오노 나나미 / 김석희

한길사



로마 제국이 점점 기울어 간다. 한번에 무너지지 않고 야금 야금 무너지고 있다. 무너진 한쪽을 쓸어 올리면 다른 쪽이 무너진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어져 간다. 부자가 죽고 망나니 아이들로 인해서 재산을 탕진하는 모습이다. 


12권에 대한 요약을 시오노 나니미가 해주셨다. 


16-17) 12권 서기 211년부터 284 73년간이다. 위기의 3세기로 불리게 된다.

3세기의 위기는 ,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와 시종일관 대처에 쫓길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차이라 해도 좋다. 로마인 본래의 사고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눈앞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본질까지 바꾼 결과 더욱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차이라고 해도 좋다.

후세의 역사가나 연구자들은 대부분 3세기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       제국 지도자층의 질적 수준 저하

-       야만족의 침입 격화

-       경제력 쇠퇴

-       지식인 계급의 지적 능력 감퇴

-       기도교의 대두

이것들은 모두 제대로 짚은 지적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1천 년에 이르는 로마인의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기독교의 대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어느 정도 경험한 위기였다.

정국 불안정로마 황제가 자주 바뀌면서 정책이 지속성을 잃어버린 것은 제국 통치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보다 더 명확한것은 2장의 연대표가 아닐까? 1세기 2세기 까지의 황제 연대표 



3세기의 황제 연대표다.


1세기, 2세기 에는 암살은 3건(칼라굴라/도미티아누스/콤모두스), 1건(클라우디우스)은 심증은 있나 확실한 물증을 현대에서 찾을수 없다. 네로는 자살을 했다. 


그런데 3세기에 접어들면서 병사는 2건이고 암살과 전사로 일관 된다. 누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적어 놓는거 자체가 일이 된거 같다. 


크게 2건의 빅 이슈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1. 카라칼라의 속주민에게 특별한 조건이 없이 로마 시민권을 전부 주어 버린것이다. 


카라칼라 때문에 로마 시민권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매력을 잃었다.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시민권에 딸린 의무감과 책임감도 느끼지 않게 된다. 그것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제국 로마가 서 있는 기반에 균열을 초래했다.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갖고 잇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현상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브랜드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에 따라 광대한 로마 제국에 사는 자유민은 유대계든 그리스계든 북방 야만족의 피를 이어받았든 관계없이 모두 로마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속주민에게는 오랜 군생활을 하면 시민권을 주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 큰 의미가 없어 진것이다. 이로 인해서 잔잔한 문제가 점차 활성화 된다. 


속주세가 없어지면서 재정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재정의 문제를 더욱 악화 시킨것은 국경이 무너지면서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야만인들의 침략이다. 파리트아 왕국의 멸망과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가 나타나면서 동방의 국경도 위태로와 진다. 


 2. 알렉산데르 황제의 항소권을 총독으로 이양 하는 것이다. 


항소권은 황제와 원로원의 권한 이였다. 항소권을 넘겨줘야 하는 이유는 카라칼라의 로마 시민권의 남발로 인한 것으로 본다. 


알렉산데르 황제의 통치는 공정하고 온건했다. 그것은 울피아누스의 지도에 따른 것이도 하지만, 그 자신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알렉산데르 황제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법률중, 지금까지 줄곧 황제와 원로원이 갖고 있었던 사법상의 최종 결정권을 속주 총독에게 이양하는 법률이다.

이 법률 때문에 기독교도를 탄압하기가 쉬워졌다는 점이다. 법 제정된 지 20년 뒤부터 기독교도 탄압이 눈에 띄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충신 울리피아누스는 자신의 부하인 근위대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모후의 묵인에 힘을 얻은 반대파가 그들을 선동 했을까


울피아누스라는 든든한 신하를 잃으면서 알렉산데르 황제는 살해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제국이 평온할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지만, 그 평화를 유지 하기 위해서는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필리푸스 황제가 보낸 2년은 평온하게 지나갔다.


첫째 요인은 국경이 평온했기 때문이다. 동방의 페르시아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았고, 북방의 게르만족도 얌전히 있어주었다.

둘째 아랍인 황제가 원로원에 대해 철저히 겸손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셋째 정책면에서는 실질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리푸스 황제는 아무것도 안했다. 어쩌면 회사에서 눈치만 보고 일을 하지 않는 높은 사람들일 수 있다. 회사가 평화로울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어려워 지면 , 뚝은 이런 곳에서 터지나 보다. 


국경 주변에는 로마를 침략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되고 있었는데, 국경 시찰도 하지 않은 황제로 인해서 로마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런 로마를 위해서 아직은 영웅이 남아 있었다. 


363) 제국 재통합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에 사로잡힌 260년 이후 갈리에누스 황제가 8, 그 뒤를 이은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가 다시 2, 두 황제가 합해서 10년을 노력했는데도 이루지 못한 일을 아우렐리아누스는 4년 만에 해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4년에 걸쳐 제국을 재통합한 것은 단순한 영토 회복이 아니라 제국 기능의 회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국은 통합이 된다. 많은 황제가 암살을 당하는 상황에서 제국의 통합을 할 황제가 나타나서 아직까지 로마가 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전까지의 황제들은 침략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누스는 영토 회복을 위해서 공격을 택했다. 


페르시아를 공략을 위해서 준비를 한다. 그러나 잘 나간다 싶으면 암살이 발생한다. 


아우렐리아누스가 무슨 일로 비서인 에로스를 꾸짖은 모양이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자신에게도 엄격하지만 남에게도 엄격한 것으로 유명했다. 꾸짖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호된 질책을 받은 에로스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태롭다고 믿은 모양이다. 비서는 문서 한 통을 위조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를 맡고 있던 몇몇 장교의 이름이 적혀 있고 맨 끝에는 에로스의 이름도 적혀 잇었다. 장교들에게 보여주었다. 장교들은 공포로 제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비서 에로스의 안내를 받아 황제의 침실에 잠입한 그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를 죽였다. 4 9개월 동안 제국을 통치한 뒤에 맞은 죽음이었다.


동시대의 연대기 작가가 아우렐리아누스 시대의 제국은 행복했다. 시민들은 그를 사랑하고, 병사들은 그를 존경하고, 적들은 그를 두려워했다.”고 기록한 사람이 정말 어이없이 생애를 마쳤다.


비서 하나가 문서 하나를 위조하면서, 황제는 죽는다. 


열심히 하는 황제들도 쉽게 암살을 당한다. 바로 주변의 병사나 근위병들에게 죽는다. 


황제는 장기간의 집권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 하는데, 너무도 쉬운 죽음으로 로마는 점점 기울어 간다. 


12권을 읽으면서 황제라는 이름만 거창 할 뿐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 인간들이다. 로마의 장점은 점점 사라지고, 단점이 부각 되어 간다. 기울어 가는 로마의 모습과 역전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곧 로마는 사라질거라는 사실을 아니 2권을 읽기가 겁이나기도 하다. 아듀~ 로마라고 말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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