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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읽고쓰다

[책읽기] 예닌의 아침 - 팔레스타인이 쓴 소설

by KANG Stroy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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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닌의 아침 수전 아불하와 / 왕은철 푸른숲

수전 아불하와는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시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을(?)을 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이 건물을 부시는 느낌은 있다. 팔레스타인 작가이지만, 영어로 책을 냈다. 이 책의 분류는 영미 장편소설이다. 팔레스타인 소설이 아닌, 영미 장편소설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것이다. 언젠가 팔레스타인 소설로 분류 되었으면 싶다. 

 

예닌의 아침은 팔레스타인의 농부의 가족 이야기다. 1941년 부터 2002년까지의 팔레스타인 한 가족의 이야기다. 올리브 나무를 키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남동생과 여동생, 여동생의 딸로 이어지는 4대의 역사로 이어진다. 6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팔레시타인 가족은 전쟁에서 죽거나 헤어진다. 마지막에 딸과 나만 남게 된다. 남동생은 이스라엘 가정에서 자라서 팔레스타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올리브 나무를 키우는곳에 이스라엘 병사들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정착촌을 만들려고 한다. 두개의 민족이 하나의 땅에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배를 타고 혼자서 팔 레스타인으로 왔다. 팔레스타인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 도 모르고 시오니즘의 유혹과 젖과 꿀에 대한 화려한 약속만 믿고 따라 온 것이다.
.....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의 땅에 오로지 유대인만 사는 날이 올 테니 까요. 팔레스타인이 우리 땅이 되는 날을 보게 될 거예요. 우리는 가정 을 이루고 새 삶을 살게 될 거예요. 이제 자요.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 들 꿈을 꿔요. 우리가 다시 박해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을 가진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다. 그들의 땅이 우리의 땅이 되려고 한다. 아랍 방송에서 시오니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KBS 방송국 기자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취재할 때 이스라엘 군인이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찍히기도 한다. 

 

예닌의 아침에서 팔레스타인의 모습이 일제 시대와 교차 된다. 힘으로 이길수 없는 존재의 일본, 그리고 독립 운동을 하는 독립군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은 군인과 싸우는것 보다. 민간인에 대한 보복적인 모습이 보인다. 전쟁은 신사적일 수 없다. 민간인을 보호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쟁속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6.25 사진첩에서 민간인들이 누워있는 사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포탄은 민간인만을 피해 갈 수 없다. 

 

안정적인 팔레스타인에 들어온 시오니즘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탄압 받는 팔레스타인의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하면 두 나라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평화를 논하기에 빼았은자(이스라엘-시오니즘)와 빼았긴자(팔레스타인)들의 거리감이 크다. 

“염병할 유대인놈들! 그놈들이 알티라에 있는 어느 집에 소이탄을쏘 고는 묘지 위의 올리브나무 숲에서 기다리고 있던 트럭으로 달아났대. 묘지에 있던 달리아를 본 게 틀림없어. 그놈들한테 잡히지 않아 다행이 야.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예야의 분노와 좌절감은 더 커졌다. 그는 방 안을 거닐고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한테도 염병할 무기가 필요해! 이 개새끼들이 이 마을 저 마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아랍군은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우리가 이 개자식들한테 뭘 어쨌다고 이러지? 우리한테서 뭘 원하 는 거냐고?”

 

예닌의 아침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농부들에게 총을 들이대는 이스라엘 군인들이였다.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것을 하나 둘 가져갔다. 언젠가는 이 일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기다렸다. UN에서 아랍군들이 도와 줄 것이라 생각했다. 뉴스에서 이스라엘이 7일 전쟁에서 이겼다. 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은 없었다. 아랍군이 물러간 자리는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팔레스타인 땅이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난민지구라고 한다. 천막이 들어서고, 다시 고향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천막위에 벽돌집을 지었다.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팔레스타인 농부는 다시 돌아가서 올리브 열매를 따서 올리브 기름을 만들길 바랬다.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고향을 마음편히 갈수 없다.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서 죽은 할머니, 난민 지역에서 자신의 농장으로 가서 올리브 열매를 따오고 다시 또 갔을 때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팔레스타인들의 스토리다. 왜 이 소설이 팔레스타인에게 중요한가?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에서 나온 이야기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이야기도 이스라엘의 역사이자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공감을 한다. 팔레스타인은 무장정파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장정파와 다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나라의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는 디즈니+에서 파친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파친코의 분류도 영미 장편소설이다. 조금씩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 이제는 한국, 중국의 역사를 알려고 하는것이 아닐까? 

예닌의 아침은 품절이다. 지금 시기에 팔레스타인들의 생각을 조금 볼 수 있는 소설이 품절이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 소설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스토리가 없다는 것은 담론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억압하고 식민화하는 유대인들에게 물 리적, 외교적,경제적 싸움에서 밀리고 또 밀리는데 담론싸움에서마 저 밀리고 있다. 그런데 담론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이 나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고, 소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세계로부 터. 세계의 역사와 미래로부터’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헤이든 화이 트(Hayden White)의 말마따나, 역사라는 것도 자기 나름의 주제와 플롯 을 가진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해야 남이 들어주는 것이다,이것은 한국의 식민역사를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얘기해 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거나 희 석시키는 일본의 이야기에 밀려나게 된다、결국 누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유대인들만이 아니었다. 집시들도 죽었다. 유럽에 거주하던 집시의 반이 나치에게 죽 임을 당했다,5 0만 명,아니 그 이상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럼에도 세계 는 유대인들만 기억하지 그들을 기억히지 않는다. 스토리가 없기 때문 이다. 게다가 아무도 그들을 위해 얘기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는 이 토록 비정하고 야박하다. 이것이 스토리가 없는 것의 서러움이고, 스토 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4대에 걸친 팔레스타인 가족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예닌의 아침》이 각별하고 중요 한 이유다.

 

아랍에서는 "감사합니다"는 말 한마디로는 불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랍 세계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언어에 배어 있었다.
‘이 선물을 주는 손을 알라께서 축복해주시기를.’
‘나를 아름답게 봐주는 당신의 눈에 아름다움이 있어요.’
‘신이 당신을 오래 살게 해주시 기를!’
‘알라께서 당신의 기도에 늘 응답해주시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주는 이 음식이 다음에는 당신 아들의 결혼…… 당신 딸의 결혼, 당신 어머니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를!’ 이런 식이었다.
그러한 문화권에서 온 나는 ‘고맙다'는 말이 늘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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